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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체질을 알아야 건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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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작성일 20-02-14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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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근주 원장/ 서울 도곡동 오행생식원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델포이 신전 기둥에 있던 ‘너 자신을 알라’는 문구를 보고 외쳤듯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에 7대자연섭생법에는 ‘너 자신의 체질을 알라’고 외치고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체질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알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체질은 단순한육체가 아니다. 체질이라는 그릇 안에는 우주와 자연을 본뜬 몸과 마음과 정신이 들어있다. 그러므로 우선, 자신의 체질과 몸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항상 밖으로만 향해있던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나는 과정을 통해, 체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서 자신을 밝히는 등불이 환하게 밝아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육체가 곧 나라는 동일시의 중독관계서 아름다운 틈새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으면 여자의 마음이 나오고, 남자의 몸을 가지면 남자의 마음이 나오는 것을 당연시 하며, 그 감정에 휘둘려 고통과 괴로움을 겪고 있다. 어쩌면 육체의 틀과 관념의 벽에 갇혀 있는 가련한 상처받은 영혼일지도 모른다. 


이 같은 단순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시작하면서, 내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시작되는 세상과 자연과 생명에 대해 조금씩 배워가면서 알아차리는 만큼 성장하고 발전한다.


그러므로 “너 자신의 체질을 알라”는 이 말은 모든 공부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나의 육신과 나의 마음을 관찰하여, 자기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사랑하면서부터 세계인식의 출발이 된다. 


그런데 내가 내 몸을 모르니까 의사나 한의사한테 나의 생리와 병리를 물으러가고, 자신의 존재를 모르기때문에 종교가에게 신과 깨달음과 행복의 세계를 구하려하고, 정치가에게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해 달라고 의지하고, 예술적 도취와 연애의 황홀에 빠지고 싶어 하고, 육체의 체질에서 올라오는 내 감정을 모르니까 바깥마음에 휘둘려서 애(哀)가 달아서 안달복달한다.


이처럼 자신의 체질을 알아간다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이고, 육체가 곧 나라는 동일시의 중독관계에서 아름다운 틈새를 만들어, 자기 삶의 변화의주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체질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이 말에는 누구나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을 한다. 


우리가 늦가을에 먹는 빨갛게 익은 홍시는 누구나 좋아한다. 그런데 이것을 조심스럽게 먹어야 되는 체질이 있다. 변비 때문이다. 비위장이 크게 타고 태어난 사람이 비위장을 영양하는 홍시나 단감을 많이 먹으면, 반드시 변비를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비위장이 약하게 타고 태어나서 항상 변이 묽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오히려 묽었던 변을 단단하게 만드는 보약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하나의 음식이 어떤 체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별로이지만, 또다른 체질을 가진 사람에게는 보약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체질은 분명히 존재해서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과 성격도 확연히 다르게 나타난다. 엄연히 존재하는 체질을 우리는 막연하게 알고만 있어서 실제 생활에서는 활용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분명히 존재하는 체질을 분류하는 정확한 기준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무한한 능력과 함께 생명력이 잠재되어 있어서, 설령자신의 체질을 분류하는 정확한 척도의 기준을 갖고 있지는 못했어도, 몸이 아프거나 건강을 얘기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체질이었던 것이다.그래서 매일같이 입으로는 ‘무슨 체질이다’ 또는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체질은 모르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누구나 손쉽게 분별할 수 있는 체계적인 원리와 구체적인 실천방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사회에는 체질분류의 기준이없다. 있기는 있는데 사상이나 팔상으로 나뉘어서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따라서 건강문맹에서 벗어나, 자연의 원리에 근거한 체질분류만 정확히 된다면 건강에 자신감이 생기며 세상살이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동양의학의 지혜의 보고인 ‘황제내경’ 에서는 체질분류의 기준과 함께 건강의 기준이 될만한 결정적인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시대와 세월이아무리 변하고 동양과 서양, 그리고 몇 천년 전의 옛날이나 지금, 또한 많은 세월이 흘러서 미래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한다 할지라도 절대 변할 수 없는것이 하나 있다. 


인간의 뱃속에 들어있는 육장육부다. 인간이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생명력의 기둥뿌리인 육장육부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땅에서 자란 음식물로 영양을 공급받고, 하늘의 기운인 숨을 받아들여 육장육부에서 기운을 만들어 내야만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이치인 진리(眞理)다. 


그러므로 체질분류의 기준과 건강의 기준은 반드시 진리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인간의 뱃속에는 무형의 장부인 심포삼초가 포함된 육장육부가들어있어서, ‘만병과 생명의 근원이 육장육부의 음양 허실 한열에 있다’고 하였으니, 사람이 타고 태어난체질을 분류 할 때의 기준은 당연히 육장육부를 근거로 해야 한다.


“인간은 모태에서 태어날 때부터 육장육부 중에 큰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어서, 그 기능과 힘의 우열이 있게 태어남으로써 인간의 생명 톱니바퀴는 원활하고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고 찌그러지고 덜컹거리며 삐뚤어진 채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수명은 짧아지고 성격도 삐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장과 육부의 크고 작은 불균형상태가 다름으로 인해서, 사람의 얼굴모양과 몸의 형태도 천차만별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인체의 형태를 동양철학적인 자연의 원리에 의해 분류하는 방법을 ‘음양오행체질 분류법’이라고 합니다.


이 방법에 의하여 육장육부의 대소를 구별해내어 그 사람의 생명현상에 무엇이 어떻게 잘못 돌아가고 있는가를 정확히 판단하는 것입니다.” (김춘식, 오행생식요법 p28) 인간이 몸을 움직이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기운은 뱃속에 들어있는 육장육부에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그 기능과 역할은 서로 다르지만 음양의 관계로 서로 깊은 연관이 있어서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인다. 


재미있는 것은 심포삼초는 형태가 없는 장부이고, 오장오부는 음에 해당하는 장(臟)으로 무언가 가득 채워져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엄마와 같고, 양에 해당하는 부(腑)는 빈 자루이며 빈 통으로 만들어져서 집에만 들어오면 손발을 까딱도 하지 않는 아빠와 같다.


실제로 쓸개(담낭)와 소장과 대장은 자루의 형태를 가지고 있고, 위장과 방광은 밥과 오줌을 담는 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면, 육장육부는 3개의 통으로 만들어진 용광로를 가지고 있다. 그 용광로는 위치와 기능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맨 위에 있는 심장은 피를 찐다. 


그리고 중간에 있는 위장은 음식물을 찌고, 아래에 있는 방광은 수분을 끓여서 불순물을 걸러내고 있다. 맛있는 밥을 해 먹기 위해서는 튼튼한밥통이 필요하다. 위장이 곧 우리 몸의 가운데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 밥통의 역할을 하며, 섭취한 음식물을 용광로처럼 끊이게 된다. 간과 쓸개(담낭)으로부터 공급되는 소화즙과 위산이 분비되면서 음식물을 반죽하고 쪄서 소장에서 흡수가 잘 되기 쉬운 물질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입에서 침과 함께 잘게 부셔진 음식물을 걸쭉한 진액의 상태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밥통에서 푹푹 고와져야 한다. 이렇게 변화시키는 과정에 많은 에너지를 끌어다 쓰게 된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음식물이 위장에서 소화되고 있을 때는 나른하고 졸리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밥통이 깨져서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서 ‘저 친구는 참 비위도 좋아!’ 할 때의 비위는 뱃속에 들어있는 오장육부 중에서 비장과 위장의 앞 글자에서 따온 말이다.비장은 음에 속하고, 위장은 양에 속하며 서로 음양 관계로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육장육부는 우리 몸에서 하는 일의 기능이나 서로 위치는 다르지만, 음과 양의 관계로서 서로 긴밀하면서도 대등하게 대립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관계이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서로 노력하는 부부와 같다. 부부가 있으면 자식이 있게 마련이듯이 인체에서는 비위장이 지배하는 부위가 있다. 그리고 가정은 그 가정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재미있는 특징이 있듯이, 사람의 체질도 장부의 대소와 기능에 따라서 몸과 얼굴의 형태 그리고 타고난 성격과 음식을 먹는 식성이 전혀 달라진다. 


7대법에서 체질을 분류할 때 비·위장이 좋게 태어난 토형(土形) 체질의 얼굴 모양은 공과 같이 동그랗게 생겼다. 그래서 비·위장의 정기가 실해서 기능이 강하고 좋으며, 별로 가리는 음식이 없이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킨다.


인체에서 비장과 위장의 정기는 우주에서의 토기(土氣)와 일치한다. 그러므로 정확하고 철저하므로 많은 사람이 믿어주어 신용이 있고, 따라서 화합하고결합하여 융합하므로 통일시켜서 고정시킨다. 신의가 있으며 포용성이 있어서 신망이 두터운 성격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그렇게 말할뿐더러 자기 자신도그렇게 느낀다. 


그러한 기운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넉살이 좋다’ ,‘ 뱃심이 있다’, ‘ 오지랖이 넓다’,  ‘ 신용이 좋다’등의 소리를 토형체질은 많이 듣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엄연히 존재하는 체질을 무시하고 사람을 건강하게 하거나 병을 완치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현재 자신이 어떤 체질인지를 알아야 넘치는 부분은 줄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서 체질을 개선해야 할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망망대해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준이 되는 나침반과 지도가 필요하듯이, 각종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기르고 생명력을 강화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체질분류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사람이 가진 체질을 형태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것인가? 지구가 태양을 회전하는 궤적을 그려보면 타원형의 원(圓)이다. 그래서 그 지구의 표면에는 살아있는 생명력이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만물은 자연을 닮아서 부드러운 곡선과 원을 이룬다. 원만한 형태의 타원형이다. 원은 스스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상생이다. 


그런데 인간만이 지나친 욕심 때문에 자기 꾀에 빠져서 경쟁과 대립으로 직선의 세상을 살아간다. 직선은 상극이다. 그러므로 형상을 가지고 있는 체질에도 마땅히 기준이 되는 형태는 자연을 닮아야 한다. 오랜 세월이 결려서 완성된 자연물의 형태는 대부분 원만한 형태의 타원을 형성하고 있다. 바닷가나 강가의 조약돌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체질에서도 기준이 되는 표준형은 계란과 같은 원만한 형태의 타원형이 되어야 한다.


음양체질분류법이나 오행체질분류법이나 모든 사물은 그 기준 즉, 표준이 있는 것이므로 모든 사건이나 사물을 대할 때 먼저 표준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완전한 학문이 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체질과 자연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체질분류도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기준으로 해야만 흔들리지 않고 쉽게 교감을 이룰 수 있다. 


이처럼 체질을 분류하는 기준을 육장육부에서 잡고, 형태적인 측면에서는 계란과 같은 원만한 형태의 타원형을 표준형으로 잡으면,그 다음부터는 쉬워진다. 이 세상의 모든 자연물의 형태는 세 가지 형태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둥근 원과 네모진 사각형과 세모진 삼각형이 전부다.


빛은 삼원색의 빨강 노랑 파랑이 모든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듯이, 모든 형태를 가진 기본은 둥글고 사각형이고 삼각형으로 기준을 잡으면 쉽게 접근할수 있게 된다. 달덩이처럼 동글동글하면 토형, 길어서 부드럽고 따뜻하면 목형, 얼굴이 사각으로 넓어서 정사각형이면 금형, 역삼각형으로 뾰족해서 불꽃처럼 타오르면 화형, 물방울처럼 아래가 무거워서 정삼각형이면 수형으로 분류하면서, 그 사람에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을 느껴보면 체질분류가 한층 재미있어진다.


우리는 단순한 누군가의 지식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질서에서 질서를 찾는 지혜를 터득하고 공유하면서 조금씩 발전을거듭해오고 있다. 그런 다음에야 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게 된다. 우선 당장 체질분류가 쉽게 와 닿지 않는다고 물러설 일이 아니다. 천리 먼 길도 한걸음부터 시작되고 지성이면 감천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했다. 


이것은 진실이다. 꽃밭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여러 종류의 꽃들 중에서 국화꽃, 호박꽃, 장미꽃들을 분류하기 위해서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도 단번에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꽃을 분류하는 기준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체질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의 원리에 근거해서 확실한 기준(基準)을 가지고 분류 할 때는 정확하고 쉽고 간단하다. 체질을 분류하는 기준만 정확히 알고있다면,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아이를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쉽고 간단하다. 체질의 분류는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며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기준이 없어서 혼란이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체질을 분류하는 목적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정확하게 자신의 체질을 알아야, 육체적인 건강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넘치는 부분을 덜어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체질이라는 육체의 틀에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는 이제 내 체질을 알았으니,내 체질대로 살아야겠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자신의 체질을 충분히 파악하여 장단점을 알아차린 다음에는, 육체가 곧 나라는 동일시의 중독관계에서 아름다운 틈새를 만들어 빠져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내 육체에서 올라오는 체질적인 특성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손잡고 같이 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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